송신자 인증 등 다양한 차단 방식 도입돼

요즘 직장인이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업무는 스팸메일을 지우는 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를 연간으로 합산하거나 전체 회사의 피해로 따지면 막대한 손실이 된다. 스팸메일 차단 서비스업체인 지란지교소프트가 지난해 10개 고객사의 메일 유통량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직원 2500명 규모의 기업 기준으로 스팸메일로 인한 노동손실이 연간 6억원에 달하고 1억2000만원 정도의 부대비용이 추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업 패리스 리서치는 스팸메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500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스팸메일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보내는 걸까? 광고성 이메일은 누구나 쉽게 보낼 수 있다. 직접 인터넷에 떠도는 이메일 목록과 메일 자동발신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메일을 보내거나 이메일 광고업체에 의뢰할 수 있다. 포털에서 ‘이메일 광고’로 검색을 하면 수십 개의 이메일 광고 대행 업체가 나온다. 광고의 도안부터 발송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 준다. 비용은 메일을 보내기만 하느냐, 열어보는 것을 카운트 하느냐, 관련 홈페이지까지 연결되는 것을 카운트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열어보는 것을 카운트 하는 경우, 1만명이 열어보는 것을 기준으로 8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한 이메일 광고대행 업체는 “나이, 주소, 직업, 취미별로 분류된 8000만개의 이메일 리스트를 갖고 있어서 타깃광고를 할 수 있다”며 “수신확인 프로그램으로 직접 실시간으로 수신여부도 체크한다”고 말했다.

최근 스팸메일은 성인 사이트 광고가 줄고 대출관련 광고가 늘고 있는 추세. 메일 솔루션 업체 딥소프트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 상반기의 경우 대출관련 광고가 45%를 차지했고 성인 사이트 광고는 5%에 불과했다. 두 번째로 많은 것은 성기능 강화제 광고로 25%에 달했고 나머지는 자격증, 창업 등 일반 광고메일이었다.

스팸메일은 크게 법률에 규정된 내용을 준수하고 있는 ‘합법적인 스팸메일’과 ‘불법 스팸메일’로 구분된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메일 제목에 ‘광고’라는 문구와‘@’기호 표시를 하고 본문에 수신거부를 할 수 있는 버튼, 전송자의 명칭 및 연락처를 포함했을 때만 합법적인 메일로 분류한다. 합법적인 메일의 경우 메일 필터 기능을 이용해 차단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었어도 필터를 피하기 위해 문구를 변형시키고 수신거부 링크가 작동이 되지 않는 메일도 많다.

단시간에 대량으로 메일을 보내기 위해 스패머(스팸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은 메일발송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한 주소에서 대량의 메일을 발송할 경우 차단되기 쉽기 때문에 다른 서버 컴퓨터를 이용해 릴레이식으로 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쓴다. 요즘엔 네트워크 관리자들에 의해 차단되자 다른 사람의 PC를‘봇(bot, 로봇의 줄인 말)’이라 불리는 해킹 프로그램으로 감염시켜 원격조종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경우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해 감염사실을 알게 되지만 봇에 감염된 ‘좀비(Zombie, 살아있는 시체)’ PC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사용자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스팸메일을 발송하는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다.

무료 이메일 계정을 발급하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이용하기도 한다. 스패머는 똑같은 ID로 메일을 많이 보내면 쉽게 막히기 때문에 수많은 이메일 계정을 만든다. 일반 사용자들이 일일이 자신의 신상 정보를 입력하여 이메일 계정을 발급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자동화된 프로그램을 이용해 계정을 대량으로 생성하고 스팸메일을 발송한다.

가장 악의적인 스팸메일은 작년부터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한 피싱메일이다. 피싱(Phishing)은 가짜 메일을 보내 개인정보(Private Data)를 낚시질(fishing)하는 것으로 금융기관의 고객안내 메일을 가장해 금융정보를 빼내 대형 금융사고로 연결될 수 있어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스팸메일을 보내는 방법이 다양해질수록 차단 기술 역시 발전하고 있다. 스팸메일 차단 서비스를 하는 업체로는 지란지교소프트, 딥소프트, 트렌드마이크로, 누리비젼 등 30여개가 있고 국내 시장규모는 500억원대로 성장했다.

스팸메일 차단은 송신 단계부터 시작된다. 이메일 계정을 공급하는 인터넷업체의 경우, 스패머가 소프트웨어로 이메일 계정을 생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입자 실명을 확인하고 사람만이 풀 수 있는 인증암호를 입력하도록 한다. 이메일 주소 자동수집 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는 프로그램도 보급되고 있다.

이미 발송된 스팸메일은 메시지 필터링 기술로 걸러낸다. 메시지 내용 중에 스팸메일에 자주 쓰이는 문자가 속해 있는지 혹은 비정상적인 첨부파일이 있는지를 확인해서 차단한다. 스팸메일이 많이 수집되면 이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패턴을 추출하여 통계적으로 스팸메일을 걸러낼 수도 있다. 스패머는 필터를 통과하기 위해 단어를 미묘하게 변형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LOVE라는 문자에서 영문 O를 숫자 0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따위의 방법이다. 필터링 작업에 혼란을 주기 위해 엉뚱한 내용을 아무렇게나 추가해 넣기도 한다. 혹은 문자로 된 메시지 대신 이미지로 만든 메일을 보내 스팸 필터 프로그램이 인식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필터링 방식의 경우 종종 정상적인 메일마저 걸러내서 문제가 된다.

스팸메일이 주로 오는 컴퓨터를 추적하여 그곳에서 오는 메일을 아예 차단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을 이용한 첫 번째 시스템은 MAPS(Mail Abuse Prevention System)에서 운영하고 있는 RBL(Realtime Black hole List)이다. 각국에서 수집한 불량 컴퓨터 주소를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이 정보를 공유하며 스팸메일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 역시 애꿎은 컴퓨터 주소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종종 정상적인 메일이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엔 송신자가 직접 메일을 인증하도록 하는 방식도 나왔다. 수신된 모든 메일에 대해 송신자에게 다시 인증 메일을 보내는데 사람만이 인식할 수 있는 패턴으로 암호를 보여주고 이것을 입력하는 경우에만 원래 보낸 메일이 수신자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송신자가 일일이 암호를 입력해야 하고 즉시 인증을 하지 않으면 메일 전달이 늦어지는 단점이 있고 뉴스레터나 동호회에서 여러 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내는 것도 받기 어렵지만 일단 한번 등록하면 다음부터는 수신이 가능하다.

스팸메일을 보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온라인 우표제가 하나의 대안으로 제기되곤 한다. 대량으로 발송하는 메일의 경우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온라인 우표를 붙였을 때만 배달되도록 하는 온라인 우표제는 국내에서는 포털 다음에서 2002년 4월 세계최초로 도입했다가 업계의 저항에 부딪혀 2005년 6월에 폐지됐다. 최근에는 AOL과 야후에서 이 제도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인터넷 접속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하원은 넷 중립성(Net Neutrality)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인터넷 접속에 대한 차별을 막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요금을 지불한 이메일에 대해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이 금지될 가능성이 크다.

수많은 기업이 스팸메일의 유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같은 기업의 마케팅팀에서는 광고성 이메일을 거리낌없이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보내면 정상메일이고 남이 보내면 스팸메일이라는 식이다. 스팸메일이 많아질수록 이메일의 유용성은 떨어진다. 메일 계정을 여러 개 사용했던 네티즌들이 일부 계정을 방치하거나 메신저 등 다른 통신수단으로 옮겨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스팸메일의 송신비용에 비해 광고효과가 크지만 네티즌들이 이메일을 외면하고 스팸메일 차단 장치가 발달하면 이메일 광고의 효용성은 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