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IT 관련 상품의 개발 및 보급 속도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을 시험시장(Test Market)으로 활용하는 IT 다국적기업들이 많다. 덕분에 신상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구입도 많이 하고 온라인상에서 정보 확산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얼리어답터를 이용한 마케팅 경쟁이 한창이다.
얼리어답터는 에버릿 로저스Everett M. Rogers의 저서인 『개혁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에서 언급된 용어로 ‘조기수용자’라고도 불린다. 로저스는 신상품을 채택하는 순서에 따라 인간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구분했다. 혁신자(Innovators), 조기수용자(Early Adopters), 초기 다수수용자(Early Majority), 후기 다수수용자(Late Majority), 지각수용자(Laggards) 등이 그것이다. 다섯 가지 유형들 중 가장 먼저 신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혁신자지만, 그들은 전체 잠재수요의 2.5%에 해당하는 소수로서 모험심은 강하지만 가격에 민감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에 얼리어답터는 전체 수요의 13.5%에 이르는 사람들로 소속 집단에서 존경을 받으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피니언리더이다.
얼리어답터는 남보다 먼저 제품의 정보를 접하고 제품을 구입, 평가를 내려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 가지 제품에 집착하는 마니아와는 달리 대상이 다양하다. 예컨대, 이들은 ‘어떤 제품이 좋더라’라는 입소문의 첫 발설자들로, 34%나 되는 신중한 ‘초기 다수수용자’에게 신상품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 구실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수입과 별 관계없이 새 상품을 보면 도저히 못 버티고 구입하며, 그 만족감에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얼리어답터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기술에 대해 가장 먼저 체험하고 평가도 내리는 신 소비자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기업이 제품을 내놓으면 사용하기만 하던 기존의 공급자 중심 시장을 진정한 소비자 중심 시장으로 바꿔가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얼리어답터를 잘 활용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는 소니 코리아이다. 소니 코리아는 우리나라 얼리어답터를 위해 온라인상의 ‘소니 스타일’이란 홈페이지에 제품 리뷰 코너를 마련했다. 소니 스타일 홈페이지에는 소니마니아, 드리머즈 얼리어답터 등의 코너가 있다. 극성 얼리어답터 중에는 국내에서 통화가 불가능한 일본 카메라폰을 사서 쓰는 경우도 있다. 용도는 통화가 아닌 카메라다. 또,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하는 올림푸스 코리아도 얼리어답터를 대상으로 사진 찍기 여행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붐이 일어서인지 이곳의 얼리어답터들은 20대 대학생부터 60대까지 그 연령층도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거원시스템은 자사 MP3플레이어 이용자 중 얼리어답터를 뽑아 기수별로 관리 중이다. 일명 아이오디오 마스터스iAUDIO Masters로 불리는 이들은 연 2회 이상 기수별로 얼리어답터를 모집해 사은품, 이벤트 초대, 행사 참가, 오프라인 모임 등을 가지며 신제품 베타 테스트 및 리뷰 작성을 돕는다. 우리나라의 얼리어답터는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소비가 있는 곳은 어디든 등장하는 파워 세력이 되었다. 2003년 제일기획이 실시한 한국 얼리어답터들의 성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72%에 이르는 얼리어답터들이 “IT나 디지털 제품이 아닌 분야의 유행도 빨리 받아들인다”라고 응답했다.
2007년 얼리어답터 사이트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리뷰 대상에 추가하기를 원하는 제품을 조사했을 때에도 디지털 제품 이외의 다양한 항목에 대한 회원들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특이한 것은 제품뿐 아니라 정치적 이슈나 사회·문화 전반의 트렌드도 이들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게시판의 이미지나 댓글은 사회문화적으로 최신 유행과 코드를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분석자료가 된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실제로 정치·사회 관련 이슈에 대해 뜨거운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와 보다 적극적인 여론집단으로서의 사회참여도 한다. 우리나라의 얼리어답터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단순히 쿨한 것을 추구하는 오피니언리더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가치 소비를 하고 소비 자체에서 재미를 찾으며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동등해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다. 제품에 대한 철저한 전문성으로 무장한 이들의 소비활동은 개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기업과 여타 소비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미 많은 고객들에게 대중매체 광고 대신 전문가리뷰나 사용자평가 등이 구매 결정에 더욱 중요한 참고가 되고 있다. 이들의 개선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제품은 시장에서 빛을 보기도 전에 불매운동에 시달리는 등 하자 있는 제품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세력으로 성장한 얼리어답터를 활용하기 위해 기업들은 단순히 최첨단 기술과 예쁘게 포장한 신상품으로 이들을 현혹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첫째, 최첨단 상품이 아닌 분야의 사업이라도 얼리어답터들의 움직임에 주목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얼리어답터들은 이미 특정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산업의 영향력자가 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면 의외의 곳에서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테크노가방이라 하여 수년 전 패션 상품으로 잠시 유행했던 하드케이스 타입의 배낭이, 인라인스케이트나 디지털카메라 촬영과 같은 취미가 붐을 이루면서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케이트나 카메라를 휴대하는 고객들에게 유용할 수 있는 견고함, 수납성과 같은 기존의 강점에 착용감 등을 개선시켜 실용적 상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둘째, 보상판매와 같은 다양한 구매지원방식을 활용해 경제력은 부족하지만 영향력 있는 얼리어답터들의 소비활동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자동차와 정수기, 비데 시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리스나 렌털이 점차로 확대되는 것도 한 예이다. 아예 중고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있다. 레인콤은 자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객간의 중고 장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결제대행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셋째, 상품의 소유가 아닌 상품 구매 과정에서의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의 특성에 알맞은 프로슈머 마케팅Prosumer Marketing(해당 키워드 참조)의 전개를 고려할 수 있다. 때로는 이들이 생산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일부 IT 제품이나 패션 제품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프로슈머 마케팅을 얼리어답터들을 대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항상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트렌드들이 있게 마련이다. 소비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이 시대에 소비를 이끄는 선봉에 얼리어답터가 있다. 얼리어답터의 역할은 기업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기업에서 얼리어답터를 지원해주면 몇 배 이상의 성과가 되돌아온다. 때로는 제조회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기능상의 오류나 흠을 얼리어답터들이 재빨리 발견해주거나 나아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시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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